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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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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산에 작성일21-03-02 04:09 조회1,2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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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을 허리삼아 뻗어 내린 산줄기는 하늘을 품고 내를 품고 마을을 품는다. 크게 품기 위해서 준령은 험한 바람과 찬 겨울과 폭염을 기꺼이 견뎌왔다. 그곳에서 어머니의 젖줄이 흐르고 꽃이 피고 새가 울고 산자락에 사람의 온기가 옹기종기 스며든다. 수 만년 그렇게 우뚝 서 있고 그렇게 품고 그렇게 내어주었다. 늘 그럴 것이다. 사람이 슬기롭게 순응하고 겸손하고 사랑하라고 조용히 일러준다. 그것은 하나의 영성체이고 마음이다. 문명으로부터 상처 입은 영혼을 달래주는 진혼의 숨결이다.
-2015 평창비엔날래 출품작 백두준령에 대해

 

이 봄도 사월은 영롱한 햇살과 보슬비와 서러움과 함께 왔다. 꽃망울은 은근한 봄비를 하룻밤 맞은 후 아침부터 저녁까지 밤늦도록 터졌다. 사월은 벼락같이 왔다. 살가죽만 남은 한 줌 조그마한 내 어머니는 이 사월을 겨우 맞았으나 사월을 보듬어 안았기에 한 해를 잘 견딜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봄나들이를 자주 할 필요는 없었다. 며칠만 가슴에 힘껏 담아도 되었다. 찬란함 슬픔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계절. 사월은 여태 그래왔던 50여년 넘은 내 봄의 기억과 더불어 왔으니까. 따스한 햇살과 햇살아래 그늘의 역사가 정교하게 마음에 남았다. 이렇게 며칠 피었던 꽃망울의 외침을 나도 그처럼 외친다. 이 붓질이 내 뿌리 깊은 심장의 노래이다. 사월 꽃 지고 연둣빛 새 이파리 돋아난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강철 새 잎이 돋는, 아기의 손 마냥 고물고물... 春四月.
-2016 갤러리두 개인전

전시주제를 거창하게 시원의 기억이라했는데 아마 그 보다 오래된 기억이거나 고향의 기억이라 하면 직접적으로 와 닿았을 것이다
. 이 것 관련하여 제 나름의 독특한 어린 시절의 체험이 있다. 제가 태어나 5살까지 살았던 곳은 문명의 흔적이 전혀 없는 산골짜기 중의 산골짜기.. 집이 몇 채 되지 않는 곳이었다. 초가집 뒤로는 아담한 동산이 있고 고작 100여미터 앞에는 아주 자그맣고 아담한 강이 흘렀다. 그 강과 뒷동산 사이에 간신히 호구지책을 연명할 만한 밭이 있었다. 강건너 가파르게 솟은 산이 있는데 영월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이름은 배거리산이다. 산 이름의 내력은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와 꼭 닮았다. 천지가 개벽할 때에 큰 홍수가 났는데 배 한 척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 이 산에 걸려 간신히 살아남았다 해서 배거리 산이다. 지금은 수십년 시멘트석회석을 채취해서 산의 절반이 사라졌다.이 산이 너무 가파르고 높아서 산인 줄 모르고 그저 강 너머 무엇인가 거대한 것이 솟아있었다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뒷동산과 강과 강 건너 거대하게 솟은 배거리산 사이의 밀폐된 조그마한 공간. 이것이 5살 때까지 내가 경험한 세상이고 우주전체였다. 세발자전거도 없었고 서당하나 없었다. 친구라고는 강가 자갈밭에서 또래의 계집아이와 소꿉장난을 한 것이 유일한 기억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 작은 공간의 바람, 끝 모르게 막연한 하늘, 밤하늘의 별, 몇 달 한 번 읍네 장터에 가신 어머니를 누나 손 붙잡고 종일 기다리던 그리움. 묘한 외로움.5살까지의 이 기억들이 내 몸과 마음에 지독하게 각인이 되어 내 인생전체를 규정해왔다. 그 느낌은 지금껏 너무도 생생하여 떠날 줄을 모른다. 어디서 불어온 바람인가. 어느 때 부터 있어왔는가. 그 강렬한 기억이 있었던 작은 공간의 큰 우주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너무도 거대하여 시원의 기억이라고 명명했고. 지금 전시되는 그림들은 그 한 줄기인 것이다. 앞으로 이 시원의 기억과 지금 살고 있는 문명과의 관계와 본질을 알아보는 것이 내 그림 여정의 지난한 과제이다. 이제 본격적인 출발선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문명으로부터 밀려난 완전한 변방의 기억. 이후 문명에 부적응하고 문명이 두려워 이제껏 그 근방에서 머무르고 있다.문명으로부터 무한한 욕망으로부터 소외된 변방은 그저 가난하고 초라하고 낡은 처소일 뿐인가. 가장 가난하고 초라한 그 곳에 어쩌면 가장 소박하고 소중한 꿈이 머물러 있을 런지 모른다. 내 그림에 낡은 집이 자주 등장하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도 많다. 나는 이런 소재에 내 나름의 숨결을 불어넣어 온기 있게 한다. 소박한 소망이 은은히 꿈틀되도록.그림의 질감이 거친 것도 이러한 소재를 표현하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삶은 아름다운가? 이는 곧 그림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와 직결된다. 그림은 다름아닌 내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보는 삶은 아름다우며 동시에 추하다. 소망스러우며 동시에 고통이다. 아마 고통스러운 쪽에 가깝겠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졌고, 종내는 이 모든 관계로부터 이별해야하니 슬프다. 그럼에도 삶은 끝내 아름다운 소망을 멈추지 않는다. 그게 세상만물이고 사람이다. 내 그림에 늘 드리운 아련함이 그것이고 슬픈 듯 하나 소망스러운 것을 결과하는 것이 그것이다.
-2017 키다리갤러리 작가와의 대화(작가생각 요지)

 

태초에 불었던 바람은 까마득한 세월 너머에 있고 지금 내 시린 옆구리에 있다. 겨울 헐벗은 나무에, 봄날 흐드러진 꽃망울에, 검푸른 바다 저 너머에, 늙은 어미의 고운 심장에, 윤동주 북간도의 그 쏟아지는 별에, 낡아 허물어진 빈 집에, 동네 허리 굵은 느티나무 흔들리는 바람에 있다. 어디에나 있고 언제부턴가 늘 있어야할 처소에 있을 것이었다.始原의 숨결은 거룩하고 가련하다. 천만년 그 산맥의 품속이 거룩하고 툭, 건드리면 허공으로 사라져 없어질 것이니 처연하다. 내 가난한 영혼은 다만 그것! 일 뿐이다. 태어나고 생성하고 자라고 소멸하는 억만년 세월의 유전인자가 나와 그대 아닌가? 진화하고 소멸을 거듭하는 거대한 숨결. 더불어 생생하게 숨 쉬고 나아가면 행복할 것이다.저 먼 어느 곳 팽나무 잔가지가 낮게 엎드려 바닷바람에 울 때 내 마음도 함께 흔들렸다. 어느 始原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일까. 흔들리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고 흔들리지 않는 것은 세상천지에 없을 것이었다. 귀 기울이면 들리고 눈 감으면 울린다. 잔가지 울음 따라 내 마음에 댕그렁- 종이 울렸다.
-2018 삼탄아트마인전시

밤새 꽃잎 흩날리던 날
. 꿈속에 낮달이 뜨고 별이 반짝였다. 꿈속에서 나는 늘 가늘게 흔들렸다. 저 먼 곳 언덕이 나지막이 울었다. 그리운 걸까 두려운 걸까 설레는 걸까. 그곳으로 달려가기를 주저하는 나는 줄곧 이 자리에 머물렀다. 언덕에 눈이 내렸다. 흔들리는 내 심장위에 꽃비가 내렸다. 삶은 늘 흔들리되 은총으로 고요히 내리는 것이었다.사랑아... 나는 조용히 불러보는구나. 부르면 내 안에 다가와 머무는 것. 이 안식의 처소만큼 위대하게 꿈틀거리는 감각이 또 있을까. 그것은 비의 이름으로 별의 이름으로 바람의 이름으로 뜨거운 햇살아래 육중한 산맥의 넉넉한 미소로 왔다. 나는 내게 다가온 그 이름의 처음을 알지 못하는데 그것은 저절로 온 것이어서 생각하여 알기 이전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엎드린 만큼 축복이었다. 신비한 일이다.
-2018 희수갤러리 개인전

이 그림은 소백산을 34일간 종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재구성한 실경산수이다.백두산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이 국토의 긴 허리인 백두대간 중 소백준령을 그렸는데 크게 보다 백두준령의 한 자락인 것이다.백두준령엔 사람이 없다. 사철 찬바람이 불고 허리 꺽인 나무들이 능선에 납작 엎드려있다.이 능선의 자락은 어머니의 품안이다. 사철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디고 품 안에 온갖 생명들을 안고 기른다. 그것은 수천만 년 수억 년의 장엄한 역사이다.온갖 생명들은 그 품 안에서야 숨을 쉬고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사람의 발길은 온전히 그 품안에서만 자유롭다. 산자락의 가장 안온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마을을 이루고 길을 연다. 사람의 문명이란 그 품에 안길 때에야 찬란하다. 새끼를 품은 어미새의 넓은 날개마냥 언제고 그 자리에 묵묵히 세상을 품어 안는 저 산맥이 있고서야 인간사의 삶이 비로소 있을 뿐이다. 이처럼 명백한 사실 앞에 겸손히 머리를 숙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거의 전부 아닌가. -2015 아트페어출품 백두준령 그림에 대하여.

겨우내 땅속 깊이 웅크렸던 나뭇가지가 기지개를 펴려한다
.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생명의 율동이 시작된 것이다. 새순이 돋고 나뭇가지는 자꾸 푸르러 더불어 숲을 이룬다. 우리들의 호흡은 싱그럽다. 심장은 새롭게 뛴다.그러므로 나무는 언제고 정겨움의 전령사이다. 낙엽이 진 앙상한 가지는 앙상한 데로 사람의 몸짓을 꼭 닮았다. 생사고락이 고스란히 그 안에 있다. 풍성한 숲처럼 사람을 품고 위로하는 생명이 어디 그리 흔하던가. 맑고 맑은 숨이다.태고부터 나무는 마을을 품어 안고 사람을 위로하는 수호신이고 정겨운 이웃이었다. 사람이 나무이고 숲이며 숲이 사람이며 모든 것들의 소망이어서 더불어 행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는 함께 생명의 가없는 찬가를 부른다.
-2019 생명의 숲 전시

나무야
...! 부르면 그는 언제고 정겹게 제 몸을 흔든다. 내가 태어나기 아주 이전부터 누구에게나 그랬다. 거친 바닷바람이 불면 제 몸을 휘어서 견디고 눈 내려 얼은 땅에서 오히려 굳건하며 한 여름 폭염 속에서 당당히 잎사귀를 피웠다. 나뭇가지 하나하나의 몸짓은 세월과 역사의 지문을 담은 채 너그러워서 세상이 고달플 때면 그저 기대면 되었다. 그러면 나무는 조근이 속삭여주는 것이다. ‘정겹구나.... ’라고.

나는 때때로 나무이고 싶었다. 정겹고 싶었다. 나뭇가지의 바람이고 싶었다. 땅 속 깊이 뻗어 내린 뿌리이고 싶었다. 세상이 소멸한다면 그건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깊은 밤 달이 뜨고 별 바람이 스칠 때 나무는 신비가 되고 동화가 된다. 모든 빛나는 꿈들은 그 속에 있다. 정겨운 이가 그리울 때 언제고 나무를 바라보고 나무야... 부르면 그게 바로 너이고 나였다.
-2019 나무이야기 2인전

사람이 산다는 것은 가파른 언덕길을 더듬어가며 위태로운 그 무엇을 헤쳐 나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 밝아야 한 날에 어둠이 강제되면 횃불을 들어 마땅하다. 각성한 시민들은 추운 날 삼삼삼오오 모여 거대한 촛불을 들었다. 이 위대한 풍경의 물결은 기어코 시대를 변혁했다. 아스팔트위에 찬란히 피어난 아름다운 꽃의 풍경이 아니던가.겨우내 얼은 땅이 풀리고 나뭇잎에 새순이 올 해도 어김없이 돋았다. 春四月 강원도 영월엔 꽃들이 활짝 피고 졌다. 그 어느 곳에서건 뭇 생명들은 피어나기 위한 의지를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삶이 귀하고 위대하다는 것은 오로지 그 각자들의 멈추지 않는 의지 때문일 것이다.

-2020 사북항쟁 40주년기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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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의 여러 생각들>

시원
(始原)혹은 원시의 개념은 내게 있어 매우 각별하다.

6살 무렵까지 살았던 고향은 화전밭을 일구던 열가구가 채 안 되는 마을이었다. 하늘과 작은 강과 높은 산과 바람이 전부였고 기계적 문명은 일체 없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어릴 적 체험은 내게 하나의 원형질, 신화적세계로 고정되었다. 그 원형질의 세계를 떠나서는 그림의 존재이유가 없을 정도로.

그 원형, 신화의 세계는 무형질이지만 모든 것을 다 끌어 않는 원초적 생명임이 내게는 분명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始原이라는 화두에 집착하는 것이 과거세계로의 퇴행일 수도 있겠다. 과연 퇴행인가? 내가 바라보는 현대문명의 본질은 발전과 더불어 시원의 세계와 조화하지 못한 채 너무 멀리 떠나왔다고 보여진다. 하여 내 그림의 큰 지향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고작 수십년만에 뼛속깊이 각인된 영혼의 원형질이 변화를 겪기는 불가능하도록 확연하고 소중하다.

 

나는 내가 꿈꾸는 <始原의 갈망> 혹은 <始原에의 갈망>이라는 화두에 대한 집착이 현대문명에 대한 적극적 방어기제라고 여긴다. 지금 살고 있는 여기와 꿈꾸는 또 다른 여기와의 갈등과 조화는 필연적이다. 나는 이를 구체적으로 <시원始原의 현재現在적 갈망>으로 명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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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추억하다>

 

내가 서른 후반이 넘도록 살아온 이 곳 내 고향, 영월군 남면 연당리

여섯 살 무렵 이곳에 오기전 영월군 서면 광전리 어느 두메 산골 내가 태어 난 곳

그 몇 해 동안의 기억, 잡힐 듯 말 듯한 아련한 향수, 내 인생 전체를 관류하는 원초적 냄새....

 

내가 태어난 그곳은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동리 집들은 고작 너덧채. 뒷동산 아래 자그마한 우리 초가집이 있고

집 마당을 벗어나 옹기종기 밭 사이를 지나 잠깐만 걸으면 자그마한 아주 자그마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가의 그 눈부신 조약돌!

 

동화처럼 조그마한 세상. 강 건너엔 무엇이 있었는가. 그 주변에서 제일 높은 배거리산이 있었다. 노아의 방주처럼, 천지개벽후 큰 홍수가 세상을 덮었을 때, 그 봉우리만 남아, 거기에 배가 걸렸다는 전설을 담은 배거리산

 

그 산 아래 강가 -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강가 조약돌 모래알로 소꿉질하며, 내 또래의 딱 한 명 계집아이랑 놀던 기억

다섯 해 동안의 기억은 그게 전부이다

 

완벽히 그 곳에는, 문명이란 없었다

자연만이 전부인, 그것도 사방이 꼭 막히고 빼꼼한 하늘만이 위로 드넓던, 그 완벽하게 원시적인 좁다란 한 세계

그 조그만 기억만으로도, 나는 한 우주가 지금껏 내 안에 살아 숨쉬는 것을 잊지 않고 늘 본다

 

아마, 평화였을 것이다. 애환, 고독, 그리움이 나도 몰래 함께하는 평화

그 사방 산골짝 안 조그만 땅 몇 평의 공간, 흐르는 강물, 사시사철 그 공간을 빼곡히 채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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